산행기·경인

퍼옴-석룡산 계곡산행(20100613)

파란별 윤성 2024. 5. 17. 16:26

 
푸른숲, 맑은계곡 여름산행으로 좋은 석룡산(1,155m)
 
2010년 6월 13일 새벽 4시
비가 새벽까지 억수같이 쏟아진다.
도담산우회에 가기로 했는데 어제부터 내린 비가 새벽부터 끝친다는 기상대의 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많은 비가 내린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비 오는데 갈려고?”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난 마눌이 귀찮듯이 묻는다.
“응~가긴 가야 하는데...비가 너무 오네...”
하면서 난 베냥을 정리한다.
“냉장고에 부친개 해 놨으니 가져가, 간장도 조금 담고...”
도시락과 김치랑 베냥에 담고, 우의도 챙기고 양발이며 티도 한 벌씩 따로 챙기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갈 준비는 마무리 해 놓고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니 계속해서 많은 비가 내린다.
“지난번에도 간다고 해놓고 비가 오는 바람에 안갔는데 이번에도 안가면 안되는데...”
혼자 중얼거리면서 같이 가기로 한 회원에게 메서지를 보내니 곧바로 답장이 온다.
   - 비가 조금만 와도 가겠는데 너무 많이 와서 나가기가 그렇네요~조심해서 다녀오세-
많이 망설였나보다. 아무래도 여자니까 나오긴 쉽지 않겠지???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마눌이 한마디 한다.
“정신없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가~, 오후엔 갠다고 하니까 우의 챙겨서 가...”
“아~네~그럼 갔다 올께~~”
 
굵은 빗줄기 속을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부천역 풀렛홈에 들어서니 많은 등산객들이 눈에 띈다.
비가 오는데도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나마 갈까? 말까? 하고 망설였던 내 자신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진다.
6시 22분 용산행 직통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내려 2번 출구를 빠져 나오자 비는 더 억세게 쏟아진다.
우산을 펼치고 버스가 정차 한다는 세아제강을 찾으러 큰 도로로 나갔다.
그러나 세아제강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쪽이 아닌가?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시간은 다가오는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도로 건너편에 세아네스틸이 보인다.
혹시 세아제강이 세아네스틸로 바뀐 것일까?
그렇다면 신도림역 2번 출구 세아제강이 아니라 세아네스틸 앞 이라고 공지해야 하지 않을까?
별것도 아니지만 이런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을 써서 처음 오는 분들이 헷갈리지 않게 해 주는 것도
산악회를 처음 찾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배려가 아닐까? 하고 생각 해 본다.
 
햇살님 한데 연락을 취하고 기다리니 하얀 버스가 온다.
처음 뵙는 분들과의 만남에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버스에 오른다.
많은 분들은 아니지만 반가이 맞아 주시니 긴장도 풀어지고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버스는 사당에서 몇 분을 또 태우고 양재역에서 많은 회원들이 승차한다.
번개산행에서 뵙던 분들이 승차하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니 한결 긴장이 풀어진다.
소나기로 인해 참석회원이 많지는 않치만 회원 한분 한분이 두 사람 이상을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 비록 20여명의 회원이지만 버스 안은 50명 이상의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회장님의 인사말씀과 대장님의 산행안내까지 웃음소리와 박수속에 매끄럽게 진행되고, 
버스는 안개 낀 경춘도로를 따라 산행지인 석룡산을 향해 내달린다.
 

석룡산 입구 도마치계곡
 
 
09시 40분쯤 버스는 산행 들머리인 조무락골 입구에 도착한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도마치계곡의 풍부한 수량과 산꼭대기의 운무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석룡산...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의 경계에 있는 해발 1,150m인 석룡산은 
경기 최고봉인 화악산 능선에 솟아있는 오지의 산으로 산 정상에 용 모양의 바위가 있다하여 석룡산으로 불리운다고 한다.
베냥에 막걸리 두병을 담고 조무락골의 시원한 노랫가락에 발 맞추며 산행을 시작한다.
10여분 오르자 조무락골산장 입구 삼거리에 도착하여 좌측 산행로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들머리인 조무락골 산장 입구(좌측으로 오름 / 우측길은 하산로)
 
 
조금전까지 내린 비에 깔끔하게 단장한 나뭇잎은 그 빛깔이 더욱더 아름답고
낮게 깔린 안개는 산행하는 사람들을 시원하게 감싸 앉고 회원들의 발걸음은 거대한 초록숲 속으로 빠져 든다.
피톤치드가 뭔지 몰라도 코 끝에 스치는 상큼한 풀 내음이 그냥 좋다.
이유는 없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느끼면 느끼는 그 감정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후미와 간격이 벌어지자 선두그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쁜(?) 마누라가 해 준 부친개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들이키니 식도를 거쳐 타고 내려가는 짜릿한 그 느낌~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다.
설령 내가 술꾼이 된다 해도 이 맛에 산에 계속 오는지도 모르겠다.
10여분 휴식 후 계속된 오르막을 거친 숨소리와 굵은 땀방울을 쏟으며 오르고,
계속된 임도를 따라 오르다 갈림길에서 다시 후미를 기다리기로 한다.
물 한모금으로 숨을 고르고, 오가는 산행객들과의 인사도 나누면서 땀을 식힌다.
“어데서 오셨어요?”
“안동서 왔어요”
“연세가 들어보이시는데 어떻게 돼세요?”
“올해 74요”
“예??? 74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일흔 넷이라는 할아버지(?) 말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쩜 일흔 넷 이라는데 지친 기색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역시 산행은 나이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산행에 대한 열정과 꾸준함만 있으면 누구나 오랫동안 산과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며
요즘 들어 자꾸 뒤로 쳐질려고 하는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후미가 도착하자 넓은 인도를 뒤로하고 바로 좌측으로 치고 올라가기로 한다.
능선에 올라서자 육산의 푹신푹신한 감촉이 전해져 온다.
능선에 우뚝 솟은 참나무 인지? 상수리나무 인지? 모를 크다란 나무가 우린 반긴다.
수령이 100년은 넘을 것 같다는 비각대장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쳐다 보게 된다.

수령이 100년이라...그 오랜 세월 동안 힘든 산행객의 벗이 되어 주었으니 고맙기만 하다.
 
 
정상을 5~600m 남기고 식사를 하기로 한다.
정상엔 마땅히 식사 할 자리가 없고, 많이 지친 것 같으니 식사를 한 후에 치고 올라가자고 한다.
오르막을 앞두고 식사를 하면 힘들텐데...
“모르겠다. 모든게 묵고 살자고 하는 긴데 그래 묵자 묵어...”
자리를 잡고 식탁보를 펼치니 여기저기서 맛난 음식들이 줄이어 나온다.
상추쌈에 게장까지...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고 진수성찬 이라고 하던가?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인 식사시간을 끝내고 정상을 향한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행시작 약 2시간 30분(식사시간 포함) 만에 정상에 오른다.

정상 기념컷...뿌연 안개가 이날의 날씨를 가늠케 한다 / 들꽃님 사진 몰래 훔쳐 옴(죄송합니다)
 
 
정상은 초록천으로 뒤덮힌 천막 안 같다.
하늘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사방으로 둘러쌓인 나무들 속에 정상석만 덩그렇게 세워져 있다.
명산에 비해 정상석은 너무 초라해 보이고, 하늘을 덮은 숲과 온 산을 감싸고 있는 운무로 인해 으시시한 느낌마저 든다.
정상주 한잔 들이키고 정상 기념샷도 담고, 습기 먹은 능선을 따라 하산길로 접어든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나뭇잎 사이로 간간히 햇살이 비취운다.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과 어울려진 초록잎은 더욱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움을 뽐내고
맞은편 화악산 능선에 걸린 운무가 서서히 춤을 추기 시작하자 모두들 그 절경에 매료되어 하산길이 더디기만 하다.
상수리나무와 참나무 숲을 지나 하산 한지 1시간여 조무락골과 만난다.
조무락골은 아침까지 내린 비 때문인지 풍부한 수량으로 비켜 달라는 듯이 우렁찬 소리를 내지르며 흘러 내린다.
그 소리에 놀란 새들은 어디론지 흔적도 없이 숨어버리고, 어디서 왔는지 다람쥐 한 마리가 계곡의 상태를 살피고 쏜살같이 사라진다.
다행히 아직은 계곡이 넘치지 않아 조심스레 계곡을 건넌다.

가슴속까지 시원함을 느끼게 해 주는 싱그러운 초록숲 하산길
 

아침까지 내린 비로 계곡물이 불어나 건너기가 조심스럽다.
 
 
오후로 접어들자 구름속에 가려진 푸르디 푸른 6월의 하늘이 드러나고
그동안의 답답함을 보상 받기라도 하듯 따가운 햇살이 내리찐다.
온 몸이 땀으로 벅벅이다.
양녕님이 빨리 가서 알탕하자며 하산을 서두른다.
앰프에서 노래 소리가 크게 들린다.
조무락골 위쪽에 계곡 주위로 음식점이 들어서고 모텔이며 숙발시설도 한창 공사중이다.
때묻지 않았던 오지의 산 석룡산도 하나 둘 오염되어 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오후 3시 30분 산행들머리인 조무락골 입구 75번 국도변에 도착하였다.
아침에 없던 버스들이 많이 주차하고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산악회에서 온 모양이다.

산행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조무락계곡 입구
 
 
계곡에서 시원한 알탕을 끝내고 비빔밥에 시원한 막걸리와 수박까지 속을 든든히 채운 후
오후 5시경 서울로 출발하였다.
서울 양재역 호프집에서 한잔씩 하고(난 막걸리) 오늘 하루 모든 일정을 끝내고 신도림행 지하철로 향한다.
막걸리 몇 잔에 조금 취하기도 했지만 기분은 좋다.
정말 좋다~~^^
 
마지막까지 신경 써 주신 도담산우회 회원님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법정스님의 잠언집에 있는 것 하나 옮겨 봅니다.
 
우리가 산을 찾는 것은 산이 그기 그렇게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산에 푸른 젊음이 있어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묻지 않은 사람과 때묻지 않은 자연이 커다란 조화를 이루면서 끝없는 생명의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
그런 산에 돌아가 살고 싶다.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20100615 파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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