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따라 한바퀴 걸어보자

2021년 9월 12일(일), 니콘 d5600+토키나 11-20mm,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조선 성곽 건축의 꽃, 수원화성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17969월 완공된 성입니다.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화창한 9월

하늘도 푸르고 햇살도 따스한 일요일, 와이프와 수원 화성 성곽을 한바퀴 걸어 보았다.

연무대에서 좌측으로 동장대-방화수류정-장안문-서장대-팔달문-봉돈-연무대로

한바퀴 도는데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10시 14분]  연무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활쏘기 체험장 앞에서 당시 병사들의 활을 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조금 올라가다 왼쪽 동장대로 들어갑니다.

 

 

동장대, 장수가 군사 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라고도 불리운다.

화성에는 2개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군사들의 훈련장소로,

서장대는 군사훈련 지휘소로 썼다고 한다.

 

 

동장대를 나와 성곽을 따라 걸어가 봅니다.

 

 

첫번째 만난 동암문

동암문은 화성 동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은 눈에 잘 뛰지 않는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이다.

화성에는 5곳에 암문이 있다.

 

 

밖에서 본 동암문

 

 

성곽 위에 지은 동북포루가 멋지네요.

포루(舖樓)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동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정조 20) 515일 완공되었다.

이곳의 지형은 주변보다 높아서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바라볼 수 있다.

 

 

 

방화수류정과 용연(우측)

방화수류정 밖 용머리바위 아래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살려 연못을 파고

작은 섬을 만들어 용연이라 하였으며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용연은 남쪽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방화수류정과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방화수류정은 1794(정조 18) 10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북동치, 장안문 동쪽 북동적대에 붙여서 세운 치성으로,

치성은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 쌓은 시설로 성벽 가까이 다가오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화성에는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다.

 

 

북동치에 있는 포

 

 

[10시 41분]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등 화성 4대문 중 하나인 장안문.

화성에는 4대문과 5개의 암문,

그리고 물이 지나는 문인 북수문과 남수문 등 총 11개의 문이 있다.

 

 

장안문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북포루

 

 

[11시 03분]  화서문, 화성의 서쪽 문이라는 뜻이다.

문 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좌)

 

 

화성 성곽길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잘 정비되어 걷기에 남여노소 불편함이 전혀 없다.

따뜻한 햇살이 바담스러우면 성곽 안쪽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화성장대(좌) 서노대(우)와 

서노대는 활을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로 앞에 있는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또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11시 17분]  화성장대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군들이 병사들을 지휘했던 장소로,

서장대로 불리운다.

 

 

화성장대 앞에서 본 수원시내 조망

성곽길 최고의 조망처가 아닌가 한다.

 

 

세계 각 도시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표시되어 있네요.

서장대에서 뉴욕 11,094km, 홍콩 2,068km, 남극점 14,113km...

 

 

서장대 바로 곁에 있는 쉼터에서 10여분 쉬어 간다.

 

 

효원의 종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앞면에는 시의 상징물인 은행나무, 철쭉, 비둘기와 수원화성의 주요 문화재가 새겨져 있다.

타종은 세번 하는데 첫번째는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두번째는 가족의 행복을 빌면서, 세번째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타종한다고 한다.

 

 

밖에서 본 암문

 

 

비상출입문인 서남암문

화성의 5곳 암문 중 유일하게 군사들이 머무는 포사를 세웠다.

이곳은 지형상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 특별히 포사를 세워 침입에 대비하였다.

서남암문은 이름은 암문이지만 성 안팍을 드나드는 통로가 아니라 용도를 거쳐 화양루로 나가는 문이다.

 

 

서남각루로 통하는 문

화성 서남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로 "화양루"로 불리운다.

이곳은 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군사적 중요 위치로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서남암문 바깥으로 길게 길을 내고 그 끝에 각루를 세웠다.

 

 

서남각루, 일명 화양루로 불린운다.

정조는 이곳에서 성곽 일대를 두루 두루 살폈다고 한다.

 

 

화양루에 갔다가 돌아나와서 가파르게 내려 간다.

 

 

저 아래 팔달문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서면 좌측에 예쁜 카페가 기다리고 있네요.

 

 

[12시 03분]  연무대에서 약 1시간 45분 걸려 도착한 수원 팔달문

1797년 정조 18년에 세워졌으며 1964년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수원화성의 남문으로 성안의 건물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

서울 숭례문과 유사한 형태로 세워졌다.

우측으로 돌아 남문시장쪽으로 진행한다.

 

 

남문시장을 지나 성곽을 따라 올라오면 동남각루가 세워져 있다.

남쪽 요충지로 감시용 건물이다.

 

 

서울 남산의 봉수대와 비슷한 모양의 "봉돈"

연기와 불을 피해 정보를 주고 받는 역할을 하였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을 피해 소식을 알렸다.

봉돈 하나에서 연기가 나면 이상이 없다는 뜻이고,

2개는 적군이 나타났다는 뜻이며, 3개는 적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으로,

4개는 적이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뜻하고, 5개 모두에서 불이 나면 전투가 벌어졌다는 뜻이였다고...

 

 

봉돈을 지나 잘 보존된 성곽을 따라 간다.

 

 

연무대도 가까이 보인다.

 

 

동북공심돈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적을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수 있다.

보통 돈대는 성곽과 떨어진 높에 곳에 세워져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동북공심돈은 성의 안쪽에 설치했으며

외벽에는 밖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수 있는 구멍을 곳곳에 뚫었다.

한국전쟁으로 절반이상이 파손되었으나 1976년에 복원해 옛 모습을 되찾았다.

 

 

 

연무대 모습

성곽을 한바뀌 도는데 약 2시간 30분이 걸렸다.

정조의 효심이 가득한 화성,

가벼운 운동과 함께 몰랐던 역사도 조금 알수 있었던 의미있는 발걸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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