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고궁 나들이

2016. 2. 8(화) 니콘 d7200+시그마 C17-70mm

[글, 창덕궁, 덕수궁 홈페이지 인용]




설날 아침 간단히 차례를 끝내고

와이프와 작은 녀석과 함께 창덕궁 구경을 가기로 하였다.

설을 맞아 창덕궁을 비롯한 고궁의 입장료가 무료라고 해서 한번 가보기로였다.

오랫만에 가족 나들이인데 큰 녀석도 함께 가면 좋겠지만 남친 만나로 간다고하니

이제 가족보다 남친이 먼저인가 보다.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 자리한 창덕궁, 참 오랫만에 와 본다.

1997년 12월 7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재로 등재되어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하는 궁궐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너무나 무관심 한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함이 드네요.



보물 제383호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현존하는 우리나라 궁궐의 대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1412년 5월에 세워졌으며 1906년에 중수 되었다고 한다.


 

돈화문에는 원래 현판이 없었다가

성종때 서거정에게 분부하여 이름을 지어서 걸게 하였다.

돈화(敦化)라는 뜻은 원래 중용에서 인용한 것으로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 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창덕궁의 전체적인 안내도

오늘은 설날이라 무료입장 이지만 후원은 무료가 아니라고 하네요.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정원에 들어 온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시끄러운 차동차 경적소리도, 높은 빌딩도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 온 듯한,

복잡한 세상과 담을 쌓은, 그저 걷기만해도 휠링이 되는것 같습니다.




후궁 쪽으로 가는 길, 좌측의 인정전으로 들어 가 봅니다.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 접견 등

나라의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인정전은 겉보기에는 2층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을 볼 수 있다.





인정전 내부

1908년 인정전 내부를 고치면서 커튼, 전등 등 서양식 실내 장식이 도입되었다.




단청의 색깔도 참 아름답네요.



인정전은 1405년(태종 5년) 창덕궁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1803년에 복원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국보 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일상적인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이다.

아침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으로 불리웠다가 1461년(세조 7년) "선정전"으로 바뀌였다.

선정전은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 공간이였으며, 왕실 생활의 마지막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원래는 대조전 주변에 많은 부속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중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 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대조전 입구에 이런 화로 같은 것이 있는데 "드므"라는 것으로 방화수를 담는 용기로서

화마(火魔)가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놀라 도망가게 한다는 생각으로 입구에 사방 모서리에 하나씩 총 4개가 있다.





후궁으로 가는 우측에 자리한 낙선재의 일부로 헌종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는 곳이다.

조선 24대 왕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으로 맞이하여 1847년 낙선재를,

이듬해 석복헌을 지어 수강재와 나란히 두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이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의 집이였다.

낙선재에서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하였다.




후원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네요.

창덕궁에서 볼 곳이 제일 많은 곳이 후원인데 입장료를 받고 있어 다음에 들리기로 한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이며 정해진 시간에 해설사와 함께 관람할 수 있으며,

내국인과 외국인을 따로 입장시키고 있습니다.

태종이 창덕궁을 창건할때 조성했던 후원은 임진왜란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고 훼손되었다가

광해군이 1610년 창덕궁과 함께 재건하였다.



후원은 왕과 왕실 가족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지만

왕이 주관하는 여러가지 야외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후원은 창덕궁의 60%를 차지할 만큼 넓으며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만들어 부용지, 애런지, 관람지, 존덕지 같은 연못을 만들고

옥류천 주변에는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등 아담한 정자들을 세워 자연을 더 아름답게 완성하였다.

연못과 정자들을 찾아서 다니면서 후원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었지만 아쉽네요...



후원 입구 우측으로는 청경궁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을 "비원(秘苑)"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궁 안에 있다하여 "내원",

일반인들은 출입할수 없는 곳이라하여 "금원"으로도 불리웠으며,

구한말에 후원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비원을 두었는데 이곳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후원을 "비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낙선재 일원



후원을 뒤로 하고 다른 곳을 둘러보면서 창덕궁을 나가기로 한다.


 

소나무와 고궁이 어우러진 풍경이 참 멋스럽습니다.



돈화문을 나와 인사동을 거쳐 덕수궁으로 가기로 한다.



덕수궁으로 가기전 세종로 광화문광장에 잠시 들러 봅니다.

세월호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세종대왕은 지금의 정치를 어떻게 바라 보고 있을까?



동상 뒤에 있는 출입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오면

세종대왕에 대한 기록들이 소상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오신다면 한번쯤 꼭 들러보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이 싹트는 돌담길을 따라 덕수궁으로...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

덕수궁이란 이름은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칭호를 올린 것인 그대로 궁궐이름이 되었다.

고종은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고종 승하 후 덕수궁은 빠르게 해체, 축소되었다.




황제의 권위를 담고자 했던 중화전 앞에서 폼도 한번 잡아보고...




창덕궁도 그렇지만 덕수궁에도 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문화재인 고궁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것 같아 씁쓸합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덕수궁을 다시 세워 일으키며

대한제국의 위상이 깃들도록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궁 안에서는 설날을 맞아 다양한 민속놀이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한번 해 보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즐건 웃음소리는 궁 안을 진동합니다.





정관헌은 궁궐 후원의 언덕위에 세운 휴식용 건물로

고종은 이곳에서 궁궐을 내려다보면서 차를 마시며 외교사절들과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한국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다.

1900년경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관헌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참 그립같습니다.



정관헌 내부




석조전의 기둥이 웅장하게 다가 옵니다.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축물로 1910년에 완공되었다.

지층과 1층, 2층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층은 주방, 창고 등이 있어 시종들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석조전 왼쪽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러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림 좋다라는 감탄사만 중얼거리면서 감상했다.



석조전





중화전을 다시 돌아보고 파란만장한 근대사의 자취를 기억하는 덕수궁,

덕수궁 돌담길과 더불어 도심의 직장인과 연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덕수궁을 나섭니다.


그동안 산행으로 인해 조금은 외면했던 고궁들,

짧은 시간이였지만 창덕궁과 덕수궁을 통해 근현대사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멋과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며

이제부터라도 조금더 관심을 가지고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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