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

2016. 5. 4(수) 니콘 d7200, 토키나 12-24mm

설명은 종묘 리플렛을 인용함




오랫만에 날씨가 너무 좋다.

바람이 조금 불긴하지만 5월의 하늘은 눈부시도록 파랗고, 햇살도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이 좋은날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운 것 같아

오후에 특별한 일도 없고하여 사무실에서 가까운 종묘로 가보았다.

조선왕조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봉행했던 종묘는 어떤 모습일까?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11번 출구로 나와서 쭉~ 내려오면 종묘 공원에 도착합니다.

종묘로 들어가는 입구의 다리  "종묘전교"는 처음에는 나무로 된 다리였으나

세종 3년에 돌다리로 개축되고 현종 4년에 개수되었다.

다리의 가장자리 네 모서리에는 해태상을 가진 화표주가 세워져 있다.





새롭게 조성된 공원 좌측에는 이상재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도심에 공원이 조성되어 특히 노인들이 많이 계시네요.



입장료가 있네요.

성인은 1,000원이며, 매주 마지막 토요일은 무료입니다.

또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하여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중앙으로 난 긴 통로와 푸른 숲이 눈에 들어옵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랄까...

돌다리처럼 생긴 중앙의 길은 "신로"로 일컬으며

조상의 혼령들이 다니는 길로써 종묘 제례 등 의식을 위해 만들어 진 길이다.

신로는 중앙이 약간 높고 좌우가 낮은 세갈래 길로 되어 있다.



입구 좌우로 아담한 연못이 있다.

연못은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중앙에 원형의 섬(?)이...

연못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하네요.



네모 형의 연못은 음을 나타내며, 가운데 둥근 형태는 양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또 원은 하늘이요 네모는 땅을 나타낸다고 한다.

즉 움직이지 않는 땅은 음, 그 사이로 흐르는 물은 양을 나타낸다고...

보통 연못 안에는 소나무를 심지만 향을 피워야하는 종묘에서는 향나무를 심었다고...

모든것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연못 중앙의 소나무는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네요.

아마도 오랜세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연못이라 뿌리가 깊게 내리지 못해서가 아닐런지...



좌측의 연못, 우측과 달리 황토물이네요.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제2회 궁중문화축전 2016"이 열려 궁중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조선 세자빈의 혼례식도 열리나 봅니다.






당시의 제례의 모습을 둘러보고 우측의 향대청으로  가봅니다.

향대청은 제사 전날 왕이 종묘 제례에 사용하기 위해 친히 내린 향, 축문, 폐백과 제사 예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향대청의 망묘

종묘를 관리하는 관원들이 업무를 보는 곳으로 도서를 보관하고 그림을 걸어 두기도 하였다.

"망묘루"는 종묘의 정전을 바라보며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망묘루 뒷쪽에 있는 "공민왕 신당"



고려 제31대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조선왕조 사당인 종묘에 고려의 왕을 왜 모셨을까?

역성 혁명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기도 하고,

종묘를 창건할 때 영정이 바람에 날려와 종묘에 떨어지자 조정회의 끝에 영정을 봉인하고 신당을 건립했다는 설이 있다.



망묘루 옆에 있는 종묘교육홍보관




홍보관 안 모습




관람객은 당연히 "신로"로 다니면 안되겠죠?



제를 위해 심신을 정결히 하던 "재궁"



재궁은 왕이 세자와 함께 머물면서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이다.

어재실, 세자재실, 어목욕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묘의 중심인 "정전"

궁중문화축전을 앞두고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왕과 왕비가 승하 후 삼년상을 치루고 그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의 중심이다.

정전 안으로 들어 가 봅니다.



와~대게 넓다

사극에서 몇번 보긴했지만 실제로 보니 대단히 넓고 멋지다.



정전의 넓은 마당인 월대는

가로 109m, 세로 69m로 정전의 품위와 장중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마당에서는 궁중문화축전을 앞두고 마지막 예행연습이 한창이다.



예행연습이 끝나고 연출자로부터 마지막 설명을 듣고 있다.

햇살은 따스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 고생하시는 것 같다.




정전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재위 중인 왕의 4대 조상,

그리고 역대 왕 중에서 특히 공덕이 큰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셨고,

정전은 신주가 늘어남에 따라 몇차례에 걸쳐 증축하여 늘렸다.



넓은 마당 월대는 안정을, 건물 전면에 반복되는 듯한 기둥의 배열은 왕위의 영속을,

수평으로 하늘 끝까지 펼쳐지는 듯한 지붕은 무한을 상징한다.




거친 월대 바닥과 위로 육중한 지붕을 떠 받치고 있는 모습은

숭고하고 고전적인 건축미의 극치를 이루며, 정전은 국보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저 뒤로 보이는 보령 빌딩이 눈에 거슬이네요.

어떻게 저곳에 저리 높은 빌딩이 세워졌을까요?




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곳인데

남문은 신문(神門)으로 혼백이 드나드는 문이고,

동문은 제례때 제관이 출입하였고, 서문은 악공, 춤을 추는 일무원, 종사원이 출입하였다.


 

서문을 빠져 나오면 "영녕전"으로 "정전"의 축소판이다



영녕전 외부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의 영녕전은 16실로 구성되어 있다.

신주를 정전에서 옮겨왔다는 뜻에서 "조묘"라고도 한다.



영년전은 세종3년인 1421년에 정종의 신주를 정전에 모시면서 이제 정전의 신실이 부족해지자 

정전에 모시고 있던 신주를 다른 곳에 옮겨 모시기 위해 새로 지은 별묘이다.



영녕전은 총 16칸으로 중앙의 4칸은 태조의 4대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비를 모셨으며

다른 칸보다 지붕이 높다.

좌우의 각 6칸은 정전에서 옮겨온 왕과 왕비 및 추존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셨다.




영녕전은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과 비슷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좀 더 친근감이 있게 지어졌다.





영녕전 서문으로 나오면 "전사청"으로 가게 되지만

어제의 강풍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전사청은 제례용 음식을 조리하던 곳이라는데...




영녕전 외부를 둘러보면서 밖으로 나갑니다.



종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듯



음악소리가 들리는데 뭔가 했더니 "악공청"이네요.

악공청은 종묘 제례때 음악을 담당하는 악공들이 악기를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연습도 하던 곳이다.



초록의 숲이 눈이 부시도록 싱그럽습니다. 





우리나라의 종묘는 중국과 베트남과는 달리 건물과 더불어 제례와 제례악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봉행했던 종묘

해설가 없이 혼자가서 많은 것은 알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조선 왕실에 대한 역사와 종묘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보호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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