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올랐다는...소나무 많고 전망 좋은 산

2016. 12. 11(일) / 해동산우회 / 니콘 D7200+시그마C 17-70mm




12월에는 여기저기 산악회에서 송년산행의 문자가 계속 들어 온다.

그래서 이번주는 평소 형제처럼 지내는 산악회인 해동산우회 송년산행에 참석하였다.

매년 송년산행으로 소래산을 올랐던 해동산우회에서 올해는 양주 칠봉산과 천보산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양주에는 불곡산이라는 잘 알려진 산이 있지만

최근들어 칠봉산과 천보산이 산악인들에게서 새로운 산행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발리봉-매봉-깃대봉-투구봉-솔치봉-돌봉-석봉 등 일곱개의 봉우리를 가진 칠보산과 천보산을 올라 본다.



동두천시 대도사 입구 삼거리에서 대도사-칠봉산-장림고개-천보산-회암사-회암사지로의 산행이다.

약 3시간 30분 예상이 된다.



8시 27분...부천에서 1시간 조금 넘게 달려온 산악회 버스는

동두천시 송내동 대도사 입구 안골에서 산객들을 내려 놓는다.


 

8시 30분...다소 쌀쌀한 날씨에 발길음이 빨라집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대도사 쪽으로 올라갑니다.



하얗게 붐어내는 연기에 고향 마을같은 포근한 느낌도 들고...

따뜻한 시골집 구들장 생각도 나는 정겨운 풍경입니다.



농장 옆을 지나 가고...



추운 날씨에 지체없이 약수터를 지나칩니다.



대도사가 보이기 시작하네요.



8시 48분...안골에서 20분, 대도사에 도착합니다.

산행객들 외 스님, 승려 등 아무도 보이지 않는 작은 절,

겨울 추위 만큼이나 빈 사찰이 스산해 보인다.


 

좌측에 범종이 마련되어 있고...



사찰 우측으로 난 산행로를 따라 서둘러 올라갑니다.



언제 내렸는지 등로는 눈과 얼음으로 미끄러워 발길이 조심스럽다.

12월엔 항상 아이젠을 준비해야 하는데 깜빡했다.



9시 02분...들머리에서 약 35분, 매봉에 도착하여 잠시 쉬어 간다.

매봉은 임금께서 사냥을 위해 매를 날렸던 곳이라고 해서 매봉 또는 응봉(鷹峰)으로 불린다고...

들머리를 대도사 쪽으로 하는 바람에 "발리봉"을 빼먹게 되어 7개 중 6개의 봉우리만 만나게 되었다.

7개의 봉우리를 다 만나려면 들머리를 봉양사거리 쪽에서 오르면 된다.



저 바위에 올라 매를 날렸을까???



매봉에 오르자 등로는 편안한 솔밭길 입니다.



비록 솔잎은 거의 지고, 수북히 쌓인 솔잎과 낙엽에 발걸음이 한층 편안합니다.



늦둥이라도 낳아 볼까???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고...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조망에 감탄 감탄합니다.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펼쳐진 양주시 조망이 환상적입니다.




오르막을 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무성한 소나무 사이를 지나고...




9시 32분...깃대봉을 지나고...



9시 33분...칠봉정에서 또 쉬어 갑니다.



칠봉정에서 본 해룡산이 가까이 보인다.

왕방산으로 이어진다고 하니 함 걸어 보고 싶다.



사진 찍으랴 자꾸 뒤처지는데 같이 가자며 기다려 주는 미소님, 감사합니다.



9시 39분...임금께서 돌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석봉(石峰)

칠봉산을 걸으면서 돌이 많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아 왜 석봉일까? 했는데

하산길에 뒤돌아보니 칠봉산과 천보산 거대한 암봉이었다.



등로는 많은 눈은 아니지만 뽀뜨득뽀뜨득 거리는 소리에 겨울 눈산행의 재미도 느껴본다.



칠봉산도 한국전쟁의 격전지 였나 보다.

이곳 칠봉산은 한국전쟁 초기에 7사단 1개 연대 및 포병부대와 북한군 4사단이 대치하면서

치열하게 전투를 했던 곳이라 한다.




9시 47분...임금이 쉬니 시위 군사가 갑옷과 투구를 벗어 놓은 곳이라하여 "투구봉(鬪具峰)"으로 불린다고...




작은 헬기장을 지니고...



아쉽게도 7봉에서 제외된 말봉

임금이 타고 온 말을 잠시 메어 놓은곳일까?



산행로 군데 군데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산행객들을 위한 배려에 감사합니다.



진달래바위 라는데...

바위가 진달래 모양일까? 아니면 뭐지???



9시 57분...칠봉산의 정상인 돌봉에 도착합니다.

들머리인 안골에서 약 1시간 30분 걸렸네요.



동두천시와 양주시를 경계로 솟은 칠봉산 정상의 탁 트인 조망이 끝내주네요.

양주시 내촌동 뒷산에서 보면 일곱 봉우리가 뚜렷하게 보인다고 해서 칠봉산으로 불리우고,

조선 세조가 왕위를 빼앗는 과정에서 많은 신하들을 죽인 것을 후회하여

전국의 사찰을 널리 찾아다니다가 사냥을 하러 이 산에 올랐다하여 어등산으로도 불리고,

또 단풍철에 단풍나무 사이로 기암괴석이 펼쳐진 모습이 한 폭의 바단병풍과 같다고 하여 금병산(錦屛山)으로도 불렸다고...



마치 천상에서 내려보는 듯한 풍경입니다.



멀리 불암산, 사패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이 구름속에서 솟아있고...





포천시 송호리 아파트단지 뒤로 주금산, 죽엽산, 천마산...



좌측으로 천보산과 천보지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운무와 산 마루금이 장관입니다.



정상에서 10여분 조망을 즐기다 천보산으로 이동합니다.



10시 17분...솔리봉을 지나고...

임금이 군사를 거느리고 떠날 준비를 했던 곳 이라네요.







칠봉산과 천보산의 일부 구간은 산악자전거의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자전거 타고 싱싱 달려도 좋을 만큼 걷기 좋은 산행로 입니다.



10시 40분...장림고개를 건너가 점심을 하기로 합니다.(30여분 소요)



천보산 가는 코스도 편안합니다.



파릇파릇 잎도 돋고, 진달래가 피는 4~6월경에 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네요.



좌측의 보루를 끼고 돌아 갑니다.



천보산5보루는 삼국시대 고구려때 쌓은 것으로 보여지고

성벽의 높이는 약3m내외로 보이고, 정상부에 오르는 3~4단의 석축 일부가 남아 있다.


11시 39분...천보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칠봉산 정상에서 천보산 정상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립니다.(점심시간 없이)


 

천보산 조망도 끝내 주네요.

천보산은 동두천시, 양주시, 포천을 가르는 산줄기 중앙부에 우뚝솟은 산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난을 피해 이 산에 피신했다가 난이 끝나자 신하들에게 이 산을 금은보화로 치장하라고 하였다.

난이 끝난후라 금은보화를 구할수가 없게 된 신하들이

산 이름을 "하늘 아래 보배로운 산"이라고 한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여

천보산(天寶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 온다.



연이은 능선과 바위봉우리, 소나무 군락이 어울려 산 전체가 수려한 경치를 뽐내고 있다.






11시 52분...천보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삼거리를 만나 회암사 약수터 쪽으로 하산 합니다.


 

내리막 등로가 낙엽이 잔뜩 쌓여 조금은 위험스럽습니다.



12시 11분...삼거리에서 20여분, 약수터에 내려와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이 운동기구는 누가 이용할까?

산행객들? 스님들 아니면 새벽에 우물가에 물 마시려 온 토끼들이 이용했을까???



12시 14분...회암사 앞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총 산행시간은 점심시간 포함 3시간 45분 소요되었습니다.


울창한 소나무와 부드러운 등로, 그리고 일곱 봉우리에 얽힌 얘기와

동두천, 양주시의 시원한 조망에 경기 북부의 새로운 산행지로 떠오를듯 하다.



하산에 앞서 회암사에 잠시 둘러 봅니다.

양주 회암사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천보산에 있는 절로

1328년 지공이 인도의 나란타사를 본떠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창건하여 조선 초기까지는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절 이었다.

옛 절터는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다.

회암사 [檜巖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려 말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었던 이 절의 승려 수는 3,000명에 이르렀으며,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절로,

조선의 태조가 왕위를 물려주고 수도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효령대군(孝寧大君)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1424년(세종 6)의 기록을 보면 이 절에는 250명의 승려가 있었고, 경내가 1만여 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1472년(성종 3)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정현조(鄭顯祖)에게 명하여 중창하였으며,

명종 때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불교 재흥정책을 펼 때 전국 제일의 수선도량(修禪道場)이 되었으나,

 왕후가 죽고 유신(儒臣)들에 의해 나라의 정책이 다시 억불정책으로 선회하자

1565년(명종 20) 사월 초파일에 보우(普雨)가 잡혀 가고 절은 불태워짐으로써 폐허화되었다.


1821년(순조 21) 지공·나옹·무학의 부도와 탑비가 고의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조정에서 1828년에 다시 중수하였으며,

옛터 옆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라는 사호를 계승하였다.

 1922년에 봉선사 주지 홍월초(洪月初)가 새로 보전을 짓고 불상을 봉안했으며 지공·나옹·무학의 진영을 모셨다.

1976년에는 호선(昊禪)이 큰 법당과 삼성각·영성각(影聖閣) 등을 중건하였다.

회암사의 정문이었던 일주문(一柱門)으로 들어서면 대웅전이 있었던 곳으로, 주춧돌의 수가 532개나 된다.





회암사에서 조금 내려오면 만나는 옛 회암사지, 크기가 대단하다.

고려 말 학자인 목은 이색은 회암사를 보고 ‘아름답고 장엄하기가 동방에서 최고’라고 찬사를 보냈으니

 절의 규모와 아름다움은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260여 칸의 규모로 한참 때는 3,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하니 당대 최고의 절이었을 곳이다.

이전부터 이 자리에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본격적으로 절이 만들어진 건 고려 말 지공대사 때로 알려져 있다.

지공에 이어 제자인 나옹화상이 이 절을 맡으면서 이곳에 많은 사람이 모였고

나옹에 이어 조선을 건국한 태조를 도운 무학대사가 머무르며 회암사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회암사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마로니에북스)









회암사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입장료가 \2,000이라 아쉽지만 그냥 패스~




이 회암사지가 복원되고 주변의 공원이 조성되면

칠봉산과 천보산과 더불어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좋은 산행지로 이끌어 주신 해동산우회에 감사드리며, 2017년에도 멋진 산행 부탁드립니다.

또한 2016년 안산 즐산으로 송년회를 갖게 됨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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