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에서 숙연함이 밀려오고...

2016. 12. 18(일) 니콘 d7200+토키나 12-24mm




강화 황산도 산책에 이어 전등사를 둘러보고 귀가길에 광성보에 들러 보았다.

광성보는 인천시 강화군 불온면 덕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성곽이다.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과 함께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 중 하나이며 신미양요 때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안해루"는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고 "안해루"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하 위키백과, 다음백과 인용]



넓은 주차장 한켠에 광성보에 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광성보는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로 도읍을 욺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바닷길을 따라 쌓은 성으로

광해군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년)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그후 숙종 5년(1679년)에 강화도의 국방시설을 확충할 때

이 보에 딸린 화도돈, 오두돈, 광성돈을 함께 축조하여 광성보에 소속시켰다.




광성돈대,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 중 하나로

숙종 5년(1679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僧軍) 8000명과 어영군(御營軍)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요즘의 병력과 비교하면 돈대는 소대병력, 보 또는 진은 중대병력과 비슷하다고 한다.



광성돈대 안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대포, 소포, 불랑기가 복원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성축을 쌓았다.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다가 1977년에 포좌 4개소와 포 3문을 복원하였다.




이게 포문인가?



광성보 안으로 들어가 본다.



신미양요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바다,

차가운 기온 만큼이나 적막감이 감돕니다.



안쪽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어제연 장군과

아우 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쌍충비각"과 "무명용사비"



쌍충비각 아래 있는 7개의 묘가 눈길을 끈다.



고종 8년(1971년) 신미양요 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 해군과 48시간의 사투를 벌인다 순국한 어재연 장군과 동생 재순을 비롯한 53명의 전사자 하였다.

그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알수 없어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였다.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가기전에 언덕 정상부에 둥그렇게 쌓은 돈대로

강화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여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새로 보인다.



손돌목돈대 외벽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아름답네요.




 아래로 내려 갑니다.



조선후기, 해안 수비를 위해 설치된 광성포대,

손돌목돈대 주변으로 3개가 설치되었다고...





용두돈대 입구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니 전장에 온 느낌입니다.



강화해협을따라 용머리처럼 돌출된 자연 암반석 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교두보로

1679년에 세워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돈대 중앙에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앞면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뒷면에는 이은상 선생이 짓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슴을 마다하지 않은 아픈 역사가 있는 광성보를 둘러보는 데는 1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세월호, 국정농단, 탄핵 등 유난히도 혼란스러운 요즘,

이름도 남기지않고 숨져간 병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반응형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주 장승마을 테마파크   (0) 2017.03.14
강화 고려궁지, 강화성당, 용흥궁  (0) 2017.02.22
강화 여행, 황산도를 아시나요?  (0) 2016.12.20
하동 청학동 삼성궁  (0) 2016.08.03
괴산 초원의 집  (0) 2016.07.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