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산성을 따라 역사속으로...

2018. 11. 3(토) 니콘 d750+탐론 17-35mm

 

 

 

 

 

지난주 토요일(3일) 강화산성을 돌아봤다.

부천 늘푸른산악회 송년산행지로 강화산성이 예정되어 있어 답사차 댕겨왔다.

강화산성은 작년 2월에 실을 형님과 함께 다녀 왔지만 그땐 북문을 안가보았기에

이번에 4대문을 돌아보고 들머리와 날머리도 정확히 알아두고자 혼자 다녀왔다.

부천대앞에서 좌석버스 9008번-고촌에서 3000번으로 환승하여 약 1시간 40분만에 강화터미날에 도착한다.

 

 

 

 

 

 

강화터미날-KT맞은편-충혼탑-동문-고려궁지-용흥궁-성공회 강화성당-북문-서문-옛 조양방직-남문-공용주차장(약 3시간 소요)

 

 

 

 

 

 

 

KT맞은편, 강화나들길 표지목을 따라 주택가로 들어간다.

 

 

 

 

 

 

 

들머리에서 약 4분쯤 들어오면 능선에 올라선다.

강화나들길 1코스가 시작되는 곳으로 산성길이다.

 

 

 

 

성곽의 형태만 남아 있다.

저 위까지 약 100m가 4대문 탐방길 중 제일 힘든 구간이 아니였나 싶다.

산행을 자주 하는 사람은 별 문제 없겠지만 초보자들은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긴 거리가 아니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주렁주렁 메달린 익은 감들이 가을이 깊어감을 느끼게 해 준다.

 

 

 

 

나무들을 왜 베었을까?

 

 

 

 

오르막을 올라서면 좌측에 충혼탑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때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강화지역 군경과 유격대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3년 10월 건립하였다.

강화군 출신 전몰군경 1,033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충혼탑 앞 단풍도 예쁘게 물들었다.

 

 

 

 

다시 올라와 성곽을 따라 내려 간다.

성곽인 아직도 보수중이다.

 

 

 

 

동문이 보인다.

 

 

 

 

동문

 

 

 

 

 

 

 

 

 

 

동문 뒤를 나와 올라오면 원불교 앞에 도착한다.

 

 

 

 

수령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둘레가 7m에 이른다.

 

 

 

 

 

 

 

 

 

 

 

 

 

 

 

 

강화초등학교 뒤

 

 

 

 

 

 

 

문화재연구소 옆에 있는 고려궁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에 사용하던 궁궐터다.

1232(고종 19) 6월 강화에 궁궐을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현재 강화 고려궁지라고 부르는 곳이 정궁(正宮)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

그러나 1270(원종 11) 고려가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 강화 고려궁은 정궁의 지위를 잃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 자리에 건물과 외규장각(外奎章閣) 등이 건립되었다.

 

 

 

 

 

 

 

 

 

 

 

 

 

 

 

 

 

 

 

외규장각

 

 

 

 

 

 

 

 

 

 

 

 

 

 

 

 

강화동종

성문을 열고 닫을때 쳤던 종으로 숙종 14년(1688년) 강화 유수 윤지완이 처음 만들었는데,

금이 가서 1711년 강화 유수 민진원이 다시 만들었다.

1999년 10월 종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타종하지 못하게 되자 동종을 복제하여 설치하고

원래의 종은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으며 보물 11호를 지정되어 있다.

 

 

 

 

 

 

 

 

 

 

 

 

 

 

 

 

 

 

 

 

 

 

용흥궁 주차장엔 관광객을 싣고 온 대형버스들로 가득하다.

 

 

 

 

성공회강화성당

현존하는 한옥 성당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당에서 내려다 본 용흥궁 주차장

 

 

 

 

 

 

 

 

 

 

강화성당 앞체 있는 용흥궁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조선 제25대 왕 철종.

왕위에 오른 그는 어린 시절에 살던 강화에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을 새로 짓고 이름을 용흥궁이라 칭했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용흥궁을 둘러보고 다시 고려궁지 앞으로 올라와 좌측으로 이동한다.

 

 

 

 

왕가정 묵밥을 지나 벚나무 터널을 지나간다.

 

 

 

 

 

 

 

 

 

 

 

 

 

 

 

 

북문

토성이었던 당시의 성은 개경 환도 때 헐리고 조선 초에 개축하였다.

그 뒤 병자호란 때 대부분 파괴된 것을 숙종 37(1711)에 석축으로 완성했다.

이때까지도 문루는 없었다. 정조 7(1783)에 강화유수 김노진(金魯鎭)이 누각을 세우고 진송루라 했으며, 197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단장했다.

이쪽을 향한 대남방송이 낡은 유성기가 토해 내는 슬픈 변사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특히 북문에서 망향제를 지내는 실향민들도 많이 있다.

 

 

 

 

 

북문 좌측으로 화장실 뒤로 가면 나들길 표지를 따라 서문을 향해 진행한다.

 

 

 

 

푸른숲과 붉은 단풍이 아름답다.

 

 

 

 

 

 

 

숲길을 벗어나 산성길을 따라 진행한다.

 

 

 

 

 

 

 

 

 

 

지나 온 산성길

 

 

 

 

 

 

 

산성길을 따라 곧장 내려 와 차도를 건너고...

 

 

 

 

정수장 옆 철망을 따라 진행한다.

 

 

 

 

 

 

 

 

 

 

 

 

 

서문

서문의 누각은 첨화루(瞻華樓)이다.

숙종 37(1711) 강화유수 민진원이 남문과 함께 건립하고 현판도 직접 썼다.

누상에 오르면 강화 시내 전부를 조망할 수 있을 만큼 시야가 훤히 트였다.

 서문 옆에 있는 연무당(鍊武堂)터는 원래 강화 진무영 군사들이 훈련하던 곳으로

이곳에서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민족의 아픈 사연은 있는 곳이다.

 

 

 

 

 

 

 

 

 

 

 

 

 

 

 

 

 조양방직1933년 최초의 국내 자본으로 지은 공장.

강화는 예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직물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은 공장 내부를 옛 형태 그대로 살려 예스러우면서도 모던한 카페로 변신했다.

990m²가 넘는 공장 터와 건물 골조를 그대로 살려 앤티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그 당시 통근버스인가?

 

 

 

 

 

 

 

 

 

 

 

 

 

 

 

 

 

 

 

 

 

 

 

 

 

 

 

 

 

 

 

 

 

 

 

 

 

 

 

 

 

 

 

 

 

 

 

 

 

조선 숙종 37(1711)에 건립했는데, 2층 누각 앞쪽에는 강화 남문,

뒤쪽에는 안파루(晏波樓)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겹처마 팔작지붕의 아담하고 시원스런 누각이다.

남문에는 병자호란의 절개의 상징물인 병조·예조·이조 판서를 지낸 김상용의 순의비가 서 있었다.

 

 

 

 

 

 

 

 

 

 

 

 

 

 

 

 

도로를 건너 성곽 옆으로 따라 들어가 오른쪽으로 틀면 공용주차장이다.

 

 

 

 

 

강화산성 4대문과 고려궁지, 용흥궁, 성공회강화성당, 조양방직을 돌아보며

한바뀌 도는데 약 3시간이 소요되었다,

고려의 대몽항쟁, 조선시대의 여러가지 아픔과 함께했던 강화도에서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알아가면서 의미를 되새겨보는 강화산성 탐방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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